경원일보

(기자수첩) 정치가 잃어버린 ‘게임의 법칙’… 법 만능주의가 만든 양아치 정치

경원일보 | 기사입력 2025/12/23 [10:17]

(기자수첩) 정치가 잃어버린 ‘게임의 법칙’… 법 만능주의가 만든 양아치 정치

경원일보 | 입력 : 2025/12/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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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원일보 황민호 기자    

 

요즘 종합격투기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주짓수 역시 어느새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두 종목 모두 그저 거친 몸싸움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 경기에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섬세한 규칙이 존재한다. 몇 년을 수련해도 모두 익히기 어려울 정도다. 겉으로는 막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게임의 법칙’과 ‘게임의 룰’이 있다. 심판이 있고, 채점이 있으며, 반칙패가 존재한다. 관중은 그 질서를 전제로 열광한다.

 

선수들은 옥타곤 안에서 원수처럼 싸우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존중하는 동료가 된다. 상대가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고 해도 선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결정타를 굳이 날리지는 않는다. 암묵적인 룰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이고, 게임의 법칙이다.

 

세상 모든 일도 다르지 않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즉 금도가 있다. 우리는 이를 윤리, 도덕, 신의, 의리, 정의, 공정, 예의 같은 말로 불러왔다.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어느 직업이든 어느 인간관계이든 서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존재한다. 이것이 곧 금도다.

 

이 금도를 넘는 사람을 우리는 ‘양아치’라 불러왔다. 범죄자에게조차 “룰은 지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우리 사회는 게임의 룰을 중시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금도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부터 게임의 룰이 사라지면서, 그 파장은 일반 사회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모든 사안을 법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풍조가 자리 잡고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최소한의 기준을 최소한의 방식으로 적용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정치판에서 법은 ‘최소’가 아니라 ‘최대’로 작동하고 있다.

 

강수현 양주시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기도청에 근무하는 양주 출신 공무원에게 식사를 제공한 일이 고발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기부행위 해당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그러나 정치·행정의 영역에서 보면 충분히 관행으로 볼 여지가 있는 사안이다.

 

양주 출신으로 상급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과 원만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어져 온 모임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만약 당선무효형이 아니더라도 벌금형이 선고된다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 모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느 당 소속 시장이었든 유지하려 했을 모임이다. 사익보다 공익성이 더 커 보이는 이유다. 대상이 상급기관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회의 자료가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회의 페이퍼의 유무가 기부행위 여부를 가른다면, 반대로 자료만 나눠주면 누구와 밥을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이는 법 논리를 위한 법 논리에 불과하다. 이 정도는 정치행위, 다시 말해 행정행위로 보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유권자 일반인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된 식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병용 전 의정부시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12년 재임 기간 중 경전철 경로무임승차 결정으로 고발돼 대법원까지 가서야 무죄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나 시 행정 차원에서 감당해야 했던 부담은 적지 않았다. 경로무임을 언제 시행할지는 본질적으로 정치·행정적 판단의 영역이다. 이를 형사 문제로 끌고 가면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잠재적 범법자가 된다.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으로, 공익성이 분명한 정책이었다.

 

의정부시의회 이계옥 의원 제명 사건 역시 정치 영역을 법의 잣대로 과도하게 축소한 사례로 보인다. 이 의원은 정치 입문 전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해 왔고, 그 기반으로 시의원이 됐다. 유치원은 법적으로 교육기관, 즉 학교다. 신한대나 경민대와 법적 지위가 같고, 규모만 다를 뿐이다.

 

교육기관은 양도·양수가 자유롭지 않다. 설립자라 하더라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구조다. 급식비 역시 전국 모든 유아에게 동일하게 지원되는 제도다. 받지 않거나 거부할 수도 없다. 이 논리라면 대학 이사장이나 총장이 국회의원이 될 경우도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신한대·경민대를 배경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사례들은 겸직으로 보지 않았다. 수혜 대상이 학생이라는 공익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민이 선출한 의원을 동료 의원 몇 명의 표결로 제명하는 방식이 과연 민주적인지 묻게 된다. “그들은 과연 그렇게 떳떳한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안 전 시장은 퇴임 후에도 고발에 시달렸고, 최근에서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고발 당시에는 마치 중대 비리가 있는 것처럼 여론이 형성됐고, 방송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설령 의혹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야 할 사안이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정치권의 고소·고발 남발은 정치와 행정을 사법의 영역에 내주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위축과 무기력이다. 자유로운 활동과 창의적 판단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인만 살아남는다. 결국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변호사 출신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판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 의회에서는 서로 마주 앉아 고성이 오간다. 미국 정치 역시 거칠다. 그러나 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뉴스는 거의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언행도 한국 정치인이었다면 이미 여러 차례 법정에 섰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범죄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인식한다.

 

정치는 정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회가 법 만능 정치에 박수를 보내는 아이러니는 이제 멈춰야 한다. 어느 당이든, 어떤 정치인이든 금도를 넘는 ‘양아치 정치’만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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