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물] 고양시장 출마 선언한 윤종은… 무참한 고문에 맞선 청춘, 그래서 ‘뿌리 깊은 정치’가 되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고양시장 출마를 선언한 윤종은 민주사회혁신포럼 상임대표. 그가 2023년 펴낸 자서전 '뿌리가 있는 정치'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온몸으로 겪어낸 한 청년이 어떻게 정치적 뿌리를 다져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1980년, 시대와 마주한 청년
1980년 5월, 서울대에 복학한 윤종은은 민주화 유인물을 나눠주던 중 뜻밖의 운명과 맞닥뜨렸다.
당시 그가 유인물을 넣은 집은 다름 아닌 연희동 전두환 장군의 자택이었다.
곧장 군인들에게 붙잡혀 집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시작된 폭력과 조사는 장기간 이어졌다.
윤 대표는 “30여 분간 곤봉과 군화발로 얻어맞으며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권총이 이마에 겨눠져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곧바로 상급 보안부대로 넘겨져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끝없는 심문과 육체적·정신적 고통
보안부대에서의 조사는 단순한 신분 확인이 아니었다.
고문은 체계적이었다. 주먹과 발길질, 상상도 못할 고문이 반복됐고, “북과 연계했느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접촉했느냐”는 끊임없는 추궁이 이어졌다.
“어제의 진술과 오늘의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행이 가해졌고, 강제로 작성된 진술서는 매번 수정 요구와 폭력이 뒤따랐다.
윤 대표는 “하지도 않은 일을 꾸며내야 했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폭력이 이어졌다”고 적었다.
그가 견뎌낸 것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면회 왔다가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돌아가던 순간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운동권 청년에서 ‘녹화사업’ 강제 징집까지
결국 윤 대표는 간첩 혐의는 벗었지만, 운동권 학생으로 분류돼 서대문경찰서와 성북경찰서 등지에서 장기간 수사를 받았다.
당시 성북경찰서에는 ‘독수리 5인방’이라 불리던 고문 기술자들까지 동원된 조사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가혹한 시간을 버텨야 했다.
두 달여간의 조사 끝에 그는 기소유예로 풀려났으나, 학교는 제적당했다.
이후 곧바로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
이른바 ‘녹화사업’이라 불린 강제 징집이었다.
당시 같은 처지로 끌려간 유시민 작가와는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는 사이가 됐다.
“정치의 뿌리는 고난의 체험에서 나온다”
윤종은 대표는 자서전에서 그 시절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라 표현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뿌리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 시절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신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고양에서 30년 거주한 고양지킴이에서 시장 도전자로
윤 대표는 30년째 고양 화정동에서 살아온 고양 지킴이다.
그는 지역 주민들과의 인연을 자주 언급하며, “고양시의 소음·주차·노후화, 규제, 복지, 교육 문제를 누구보다 잘안다"고 강조한다.
지방자치와 생활밀착형 정치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뿌리가 있는 정치’라는 것이다.
다시, 정치의 길로
윤종은 대표의 정치 여정은 단순한 선거 도전이 아니다.
고문과 강제 징집, 제적이라는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그의 삶은 정치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는 “정치는 개인의 이력이 아니라, 뿌리 깊은 체험에서 비롯된 비전이어야 한다”며 고양시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다.
윤종은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서울대 인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 경영대학원과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대신증권 입사를 시작으로 교보투자신탁, 국민은행 신탁팀 등에서 활동하며 금융·경제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07년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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